지난 주 한국을 방문한 일본 외무성 차관이 “아베 내각은 역대 일본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돌연 일정을 취소하고 본국으로 복귀했다. 같은 날 일본의 관방장관은 “위안부 강제 연행은 없었다”며 과거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렇듯 일본의 과거사 반성이 없는 한 한일관계 정상화는 요원해 보인다. 반면, 북핵 위협에 대한 대응이나 경제적 협력 등을 위해서는 이웃나라 일본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최근(3월 14일) 아베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고노 담화와 식민 지배를 공식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그간 경색 국면에 있던 한일관계가 개선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아베 총리의 발언이 있기 직전인 3월 10일부터 13일까지 나흘간 한국갤럽이 한일 관계 평가, 한일 정상회담 필요성, 일본의 군사력 증강, 일본의 과거사 반성, 독도 문제 등 한일 관계 전반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을 알아봤다.
현재 한일 관계 ‘좋지 않다’ 94%
아베 총리 집권 이후 일본 정부는 과거사 문제에 왜곡된 입장을 취해 주변국들과 외교적 마찰을 빚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는 독도, 위안부, 동해 표기 등 여러 사안에서 첨예하게 맞서고 있으며 작년 12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감행, ‘안중근 사형수 발언’ 등으로 한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3월 14일 아베 총리가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할 것이란 발언을 했고 박 대통령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과연 그것이 양국 관계 개선의 단초가 될 것인가는 아직 미지수다.
한국갤럽이 아베 총리의 발언 직전인 지난 3월 10일부터 13일까지 나흘간 전국의 만 19세 이상 남녀 1,211명에게 현재 한일 관계가 어떤지 물은 결과 94%가 ‘좋지 않다’고 응답했으며 3%는 ‘좋다’, 3%는 의견을 유보해 우리 국민 절대 다수가 한일 관계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앞으로 한일관계 ‘더 좋아져야 한다’ 75% > ‘현재대로 또는 더 나빠져도 된다’ 21%
일본은 우리의 중요한 경제 교역상대국이자 우리 교민들이 많이 사는 나라이며, '북핵'이라는 실질적 안보 위협에 공동 대응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인 일본과 언제까지 이렇게 냉랭한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앞으로 한일 관계에 대해 물은 결과 75%가 ‘더 좋아져야 한다’, 9%는 ‘현재대로가 좋다’, 12%는 ‘더 나빠져도 된다’, 4%는 의견을 유보해 한국인 네 명 중 세 명은 양국 관계 개선을 희망했다.
모든 연령대에서 한일 관계가 좋아져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은 가운데, 2040 세대는 그 비율이 70% 선, 5060 세대는 좀 더 높은 80% 선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 ‘과거사 반성하고 있지 않다’ 96%
현재 일본 정부가 전쟁 중 침략 행위 등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고 보는가 하는 질문에 한국인의 96%는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고, ‘반성하고 있다’는 단 2%에 불과했으며 2%는 의견을 유보했다.
최근 아베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고노 담화와 식민 지배를 공식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그간 보여온 강경 일변도의 태도로 미루어 볼 때 한국인 상당수는 그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쉽사리 거두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국민 중에서는 ‘과거사 반성하는 사람이 더 많다’ 17% < ‘그렇지 않다’ 65%
과거사 문제에 대해 보수우파에 해당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과 일본 국민, 보통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정부가 아닌 일본 사람들은 과거사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지 물은 결과, ‘과거사를 반성하는 사람이 더 많다’ 17%, ‘그렇지 않다’ 65%, 18%는 의견을 유보했다. 즉, 일본 정부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국민 절반 이상이 일본 국민 중에서도 과거사 반성을 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봤다.
단, 이것은 어디까지나 실제 일본 사람들의 태도가 아닌, 일본 사람들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이다. 한국 언론이나 외신을 통해 자주 전달되는 일본 정부의 태도, 일본 사회의 혐한 집회나 반한 분위기 등이 반영된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과거사 인식 개선 없이 한일 정상회담 의미 없다: ‘공감’ 74% > ‘비공감’ 16%
박근혜 정부 출범 후 한미, 한중, 한러 정상회담이 모두 이뤄졌지만 껄끄러운 과거사 문제로 인해 한일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못했다. 일본 아베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 희망 의향을 몇 차례 비쳤으나, 박 대통령은 작년 ‘일본 정부의 과거사 인식 개선 없이 한일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밝혔으며 최근 한일 외교차관 회담에서도 기존 입장을 재차 확인한 바 있다.
‘과거사 인식 개선 없이 한일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공감하는지 물은 결과, 74%가 ‘공감한다’, 16%는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10%는 의견을 유보했다.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박 대통령의 입장에는 성, 연령, 지역, 직업, 지지정당, 이념성향 등 모든 응답자 특성에서 공감한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현 상태에서라도 한일 현안 풀기 위한 정상회담 필요: ‘공감’ 52% vs. ‘비공감’ 40%
- 한일 관계 개선 희망, 우리 정부의 적극적 자세 요구 반영
한편, ‘현 상태에서라도 한일 현안을 풀기 위해 한일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절반가량인 52%가 '공감한다'고 답했고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40%로 적잖이 맞섰으며 8%는 의견을 유보했다.
현 상태에서라도 한일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는 의견은 남성(48%)보다는 여성(57%)에서, 연령별로는 20대(62%)에서 가장 많았다.
‘과거사 인식 개선 없이 한일 정상회담 의미 없다’는 대통령 발언 공감자(900명) 중에서도 현 상태에서의 정상회담 필요 49%, 불필요 45%로 의견이 양분됐다.
한국인은 한일 양국의 진정한 관계 증진을 위해 일본 정부의 과거사 인식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정부가 일본의 태도 변화만을 기약없이 기다리는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정상회담 추진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북핵 위협 대비해 양국은 군사적으로 더 긴밀해져야: ‘공감’ 42% vs. ‘비공감’ 48%
지난 주말에도(16일) 북한은 동해상으로 단거리 미사일 25발을 발사했다. 한국과 일본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군사적 불안 요소는 역시 북한이고 북핵이다. 이는 또한 한일 간 공조 필요성이 가장 큰 부분이기도 하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비해 한국과 일본이 군사적으로 더 긴밀해져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물은 결과 ‘공감한다’ 42%, ‘공감하지 않는다’ 48%로 의견이 엇갈렸고 10%는 의견을 유보했다.
연령별로는 3040 세대의 약 60%는 한일 군사 공조 강화에 반대했고, 20대와 60세 이상은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약간 우세했으며 50대는 양쪽 의견이 각각 44%로 팽팽하게 맞섰다.
이념성향별로 보면 보수층은 공조 강화 주장에 '공감' 48%, '비공감' 45%로 의견이 갈렸으나, 중도/진보층은 양국 군사 공조 강화에 반대하는 의견이 좀 더 많았다.
일본의 군사력 증강: ‘위협이 된다’ 79% > ‘북핵 대응에 도움 된다’ 8%
일본의 군사력 증강이 북핵 문제에 대응하는 우리나라 안보에 도움이 되는지 물은 결과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8%에 불과했고 79%는 오히려 ‘위협이 된다’고 봤으며 13%는 의견을 유보했다.
일본의 군사력 강화가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에 위협이 된 사례가 많았던 과거 역사를 감안하면, 그에 대한 한국인의 우려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인 열 명 중 네 명은 북핵 위협 대응을 위해 일본과 군사적으로 더 긴밀해져야 한다고 봐, 현재 우리 안보에 가장 큰 위협 요소는 역시 북한임을 알 수 있었다.
‘독도는 명백한 한국 땅’ 98%
작년 8월 일본 정부는 자국민의 61%가 '독도는 일본 땅'으로 본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독도 홍보 동영상을 배포하는 등 현재 우리나라의 합법적인 영토인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보이게끔 하려는 도발을 계속 하고 있다.
이러한 독도 영유권에 대해 한국인의 98%는 '명백한 우리 땅'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1%는 ‘영유권이 명확치 않은 분쟁 지역', 1%는 의견을 유보했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해서는 안 될 일’ 86% > ‘이해할 수 있는 일’ 7%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는 태평양 전쟁 전범들이 안치되어 있다. 따라서 일본 고위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여부는 과거사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드러내는 상징적 행사로 간주된다. 아베 총리는 작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감행해 평화 공존을 바라는 주변국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우리 국민 86%는 일본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해서는 안 될 일’이라 지적했고 7%는 ‘이해할 수 있는 일’로 봤으며, 7%는 의견을 유보했다.
이번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현재 우리 국민들은 한일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길 희망하지만 독도, 과거사 문제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강경한 태도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보며 일본 군사력 확장에 대한 경계심도 여전했다.
일본이 주변국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과거사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아시아의 리더로서 새로운 평화와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고 갤럽은 총평을 했다.
(한국갤럽 제공자료)
조사 개요
- 조사기간: 2014년 3월 10~13일(4일간)
- 표본추출: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
- 응답방식: 전화조사원 인터뷰
- 조사대상: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211명
- 표본오차: ±2.8%포인트(95% 신뢰수준)
- 응답률: 14%(총 통화 8,466명 중 1,211명 응답 완료)
- 의뢰처: 한국갤럽 자체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