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이 교체되면서 '서울 남산'에 관련한 서울시 정책도 크게 변하고 있다.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는 한, 전임 시장이 대외적으로 공표했던 정책목표에 따른 행정집행의 안정성을 추구해야 합당할 것이지만, 그 방향이 본질적으로 잘못되거나 미진한 경우라면, 과감하게 시정, 보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정책변경의 전제로서 '서울시장의 기본철학'과 '서울시민의 다양한 의견'이 합리적으로 조율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남산에 관한 정책적 제언을 드린다.
첫째, '남산 위 저 소나무'이다. 남산은 서울은 물론이요, 대한민국과 우리들의 정체성을 표상한다. 애국가에도 '남산 위에 저 소나무'가 나오고있지 않는가. 조선시대의 진경산수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한양 풍경에도 '남산 위의 저 소나무'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러나 겸재가 그렇게도 매번 강조했던 ‘남산 위의 저 소나무’가 사라져버렸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라고 애국가 2절에도 등장하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6·25 전쟁 때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남산 소나무는 요즘말로 서울의 상징, 역사적 랜드마크였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한국인의 정서적 구심적 역할을 했다.
그런데 전임시장은 남산에 소나무 숲을 늘려가는 녹지화 실적에만 신경을 썼지 '그 남산 소나무가 뜻하는 역사문화적 상징성'에는 아주 무심했다. 남산 석호정을 쫒아내자는 발상도 그런 연장선에 있있다. 소나무의 우리말 이름인 ‘솔’은 ‘으뜸’을 뜻하는 옛말 ‘수리’가 변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정체성과 서울의 문화적 원천이 바로 ‘남산 위의 저 소나무’에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니 ‘남산의 소나무 숲’의 형식적 복원실적에 그치기보다는, 애국가에 나오는 그대로, ‘남산 위의 저 소나무’를 남산 정상에 상징적으로 되살려볼 필요가 있다. 그 구체적 방법으로 전국 팔도에서 가져온 소나무를 '남산 위의 팔도송 소나무'로 가꾸어보자.
더불어 남산 팔각정의 기둥을 소나무 원목으로 바꾸어 세우자. 남산 팔각정이 조선시대에 있었던 역사적 명소는 아니더라도, 이승만 대통령의 '우남정'을 거쳐 1968년경에 지금과 같은 '콘크리이트 기둥 팔각정'으로 들어섰는데, 어쨌거나 서울시민의 사랑을 받고 외국관광객들이 즐겨찾는 자리가 되었다. 그런 명소에 콘크리이트 기둥을 지금처럼 방치해 둔다는 것도 심히 개탄스럽다.
요컨대, ‘남산의 소나무 숲’ 이야 계속 복원해 가되, ‘남산 위의 저 소나무’를 되살려보자고 제안한다. 지금의 남산 광장 한 켠에 ‘용비승천, 독야청정, 낙락장송'의 기상이 밴, '남산 위 저 소나무', 예컨대 "8도송"을 심어 고이 키워나가자. 현재의 잡목 숲을 차차 정비해보자. 그리하여 '남산 위 소나무'를 서울의 랜드마크는 물론이요, 민족기상의 상징적 브랜드로 되살려보자. 때가 무르익으면 ‘소나무 축제’도 가능할 것이다. 아울러 현재의 콘크리이트 팔각정도 예컨대 ‘소나무 팔각일송정’식으로 바꾸어보자.
둘째, 남산동쪽 봉우리에 있는 '미군기지 이전정책'여부이다. 남산은 앞서 말한대로 우리의 정체성 표상이었기에 역사적으로도 그 훼손이 심했다. 일제 당국이 최초에는 남산 정상 쪽에 있던 ‘국사당’을 인왕산으로 쫒아내며 1926년경 ‘조선신궁’을 조성하며 ‘일장기 계양탑’을 세울 때 그 주변 소나무들을 파헤쳤다. 남산 주변에는 일제당국의 행정, 군사시설이 즐비했다. 해방과 6·25 전쟁을 계기로 '해방촌'이 들어서면서, 또한 이승만 대통령의 ‘우남정’ 과 '이승만 동상' 때문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 후로도 독재정권의 과시적 기념물이나 건물들로 역시 베어지고 깎여 나갔다 그러다가 6,25 전쟁체험의 여파로 남산의 동쪽 봉우리를 통째로 미군통신기지로 내주게되었던 것이다.
전임시장이 추진한 남산 르네상스 정책의 본질적 한계는 바로 거기에도 있었다 남산 봉우리를 미군에 내주고 있으면서도 '남산 르네상스, 남산 제모습 찾기'라니,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신임시장이라한들 일거에 한칼로 남산의 미군을 내쫒을 수는 없을 일. 이 기회에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이전대안을 세우고 추진하라는 것이다. 요즘처럼 기술적으로 고도화된 디지털 환경에서는 미군통신기지가 꼭 남산 정상에 있을 필요는 없다고한다. 서울 인근의 다른 산으로 옮겨갈 수도 있을 일이다. 맺는다. 이런 모든 일은 남산을 바라보는 서울시장의 기본철학이 공고할 때라야 비로서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