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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단풍이 절정인 삼각산에 올랐다. 결론부터 말하면 거기서 비롯된 씁쓸한 얘기를 하려는 거다. 필자는 울긋불긋한 온 산의 풍취에 반해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눌러댔다. 그 와중에 네 식구 한 가족을 만났고, 예의 서비스 정신을 발휘했다. 그들과 자연스레 말을 섞었고, 단란한 모습이 참 보기 좋아 가족사진을 찍어 보내주겠다는 친절마저 과시(?)했다. 이튿날, 잘 나온 것으로 석장을 골라 이메일로 보냈다. 나는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고 공연히 흐뭇해 졌다.
그 다음날 월요일 아침이었다. 뜻밖에도 내 전화기에 기다란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산에서 만난 아이 아빠가 보낸 거였다. 감사 인사려니 했다. 헌데 웬걸! 나는 기절초풍해야만 했다. 나를 향한 분노가 극에 달한 듯 입에 담기 힘들 상말은 기본, 욕설에 육두문자까지 마구 뒤섞인 메시지인 까닭이었다. 그 내용을 축약하면 이렇다. ‘이메일 보고 딸애가 크게 놀랐다. 음란파일을 보내고 지랄이냐 XX아...“ 난 무척 당황스러웠고, 또 황당했다. 이름도 모르는 이한테 그것도 나이도 어린 사람에게 이런 모욕을...! 그 사람한테 전화를 걸어 자초지정을 물었다. 허나 다짜고짜 음란파일이 붙어 왔다며 죄인 다루듯 문책을 해댔다. 심지어 ’청소년보호법‘을 거론하며 수사의뢰까지 들먹였다. 그럴 리가 없다고 부인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졸지에 난 어린애한테 음란물을 퍼뜨린 파렴치한이자 변태가 됐다.
퍼뜩 어떤 사건들이 떠올랐다. 뺑소니 사고를 거푸 당한 두 살 바기 아이를 18명이나 모르쇠 지나치며 고스란히 방치했었다는 중국의 안타까운 소식이다. 벌건 대낮에 거리에서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수 시간 동안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했다는 비참한 소식도 있다. 모두 팽배한 불신이 낳은 무관심이란 어이없는 부산물이리. 평소엔 남의 나라일로만 여겼었는데, 내가 이런 곤경에 처하다니! 괜히 오지랖 넓은 짓 벌인 걸 후회해야만 했다. 온종일 스트레스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메일을 다시 살펴봤다. 아무 탈 없었다. 혹시나 싶어 전산부서 직원에게까지 확인했다. 당연히 이상 없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제 하나밖에 없다. 컴퓨터다. 그 사람에게 다른 피시로 이메일을 열어보라고 했다. 음란메일이라 집에서는 곤란하니 낼 아침 출근해서 보겠다고 한다. 다음날, 어인일인지 아침 9시가 넘고 10시가 지나도 연락이 오질 않았다. 문제가 여전하다면 보나마나 그 사람 성정으로 보아 득달같이 추궁이 오고도 남았을 텐데... 이윽고 당도한 메시지 요약. “저희 집 컴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무례함이 지나쳤습니다...” 예측대로였다. 그 사람 집 피시가 스파이웨어나 바이러스에 걸린 게 틀림없어 보였다. 제기랄! 참으로 허탈했다. 하루였지만 내겐 여삼추 같았을 만큼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는데, 문자 하나로 달랑 해결하려 들다니. 그러나 어쩌리. 쫓아가 뺨을 후려칠 수도 없고, 그저 액땜했다 쳐야지...
이번 주말에도 나는 산에 오를 계획이다. 그러면 또 누군가와 스칠 것이다. 헌데, 지금 심정으로는 더 이상 그런 인연에게 친절을 보이긴 힘들 것 같다. ‘쓸데없이 간섭하고 참견하는 오지랖’은 그만 넓혀야겠지! 심각한 불신사회, 이 사회를 사는 우리는 특히 독자 여러분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하실지 자못 궁금하다.
글/사진 염승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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